조선 호적으로 다시 태어나기

전생 호적

1600~1860년, 실제 호적의 신분 비율로 태어나
그 시대를 계절마다 살아 봅니다.

아동 사망, 기근, 전쟁, 노비 제도를 다룹니다. 15세 이상 권장. 이름은 어디에도 저장하지 않으며, 태어난 해와 결말 같은 익명 통계만 모읍니다.

같은 주제로 친구도 각자 다른 삶을 뽑습니다. 끝에서 이 질문에 답할 순간을 고를 수 있어요.

조선 사람 100명 중 양반은 몇 명이었을까

조선은 3년마다 집집이 식구와 신분을 적은 호적(지금의 주민등록)을 만들었습니다. 고을마다, 시대마다 신분 비율이 크게 달랐고, 이 게임은 당신이 태어난 해와 고을에 맞는 비율로 신분을 뽑습니다.

남쪽은 170년 사이 양반이 열에 하나에서 열에 예닐곱으로 늘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족보와 양반 신분을 사들였기 때문입니다. 서북 지방은 끝까지 양반이 드물었습니다.

자료와 출처
  • 신분 비율: 태어난 고을에 따라 다르게 씁니다. 대구는 대구부 호적(1690·1729·1783·1858년, 시카타 히로시), 그 밖의 경상도는 단성(1678)·울산(1729·1765·1867) 호적, 다른 남부·중부는 여러 고을 호적 연구의 양반 비율 범위 중간값, 평안·함경은 양반이 극히 적었다는 연구(송준호)를 따릅니다(우리역사넷 정리). 노비 비율은 대구·울산·단성 밖에는 고을 자료가 없어 대구 추세를 빌립니다.
  • 사망률: 18~19세기 족보를 분석한 연구의 남성 출생 시 기대수명 약 23세(한국인구학, 「Fertility, Mortality, and Population Growth in 18th and 19th Century Korea: Evidence from Genealogies」)에 맞춰, 모형 생명표 모양으로 나이별 사망 확률을 정했습니다. 양반은 조금 낮게, 천민은 조금 높게 둡니다.
  • 혼인 나이: 1936년 울산 달리 조사(여성 초혼 17.0세, 남편 23.7세)와 경국대전 혼인 허용 나이(남 15세, 여 14세).
  • 과거: 문과 급제자 1만 4,615명(한영우, 『과거, 출세의 사다리』), 조선 후기 무과 급제자 약 12만 명과 18세기 후반 무관 자리 2,731개(한국역사연구회)에 맞춰 합격 확률을 정했습니다. 문과는 평생 응시해도 거의 붙지 않습니다.
  • 궁녀: 한 세대 약 600명(이익, 『성호사설』). 입궁 기회는 극히 드뭅니다.
  • 노비 비중의 감소: 대구 43.1%(1690) → 15.9%(1789), 울산 13.9%(1729) → 2.0%(1765). 노비가 도망·속량으로 신분을 벗어나는 일이 드물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 그림: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신윤복 『혜원전신첩』, 김준근 『기산풍속도』. 모두 저작권이 끝난 퍼블릭 도메인 그림으로, 위키미디어 공용에서 가져왔습니다.
  • 역사 사건과 실존 인물은 실제 해와 지역에서만 일어납니다. 대화와 장면은 지어낸 것입니다.
  • 결말 희귀도: 같은 규칙으로 1,500번의 삶을 직접 돌려 센 값입니다.
운명이 당신의 고을을 고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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